-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 역사는 반복된다
-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1. 국제 주변 정세의 정확한 파악 부족"
한국은 유난히도 역사적 선택이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선 적이 많았다. 역사적으로 고난이 많았던 가장 큰 원인은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배우지 못하면 한국은 다시 한번 위험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자들이야 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당선이 되야 하는데, 그 짧은 권력과 자기 성공만을 위한 유치한 그 한놈의 욕심으로 인한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2. 인재의 정확한 활용방법에 대한 무지"
인재를 정확하게 기용하고 정확하게 관리하는 것은 작은 회사도 마찬가지다. 경영을 잘해야 나라가 잘 운영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한국 역사에서는 유난히 쿠테타가 많다. 그리고 내부 배신자, 배신국가(신라)가 많았다. 이것은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한국의 역사는 계속 반복되어 왔다.
1. 고조선
거의 신화 취급을 받는 고조선은 한국의 기원이 되는 나라인데 비파형동검 등과 여러 유적을 통해 요하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하지만 삼국사기 등에서 나온 것과 같이 고조선이 망하게 되고 고조선 유민이 한반도로 남하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역사의 기록이 없지만 국가가 망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망한 이유는 뭘까? 바로 주변을 살피지 않은 죄!다. 역사적 선택의 기로에서 잘 판단하려면 주변을 샅샅히 파악해야 한다.
2. 고구려
쿠테타 하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나 박정희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주 오래전 고구려가 망하기 직전에도 쿠테타가 있었다.
영류왕 14년(631년)에 연개소문은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하고 있었는데 대신들은 연개소문의 성품을 두려워하던 끝에 그를 죽이려 모의했으나, 연개소문은 이것을 사전에 눈치를 채고 대궐로 쳐들어가 영류왕을 죽였고, 보장왕을 옹립하고 자신은 대막리지가 되었다.
실질적으로 고구려를 좌지우지한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망하는 주요원인이 되었고, 그 몰락은 연개소문의 세 아들이 합작했다. 연개소문의 세아들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중 첫째 연남생은 당으로 넘어가 현재의 친일파와 같은 친당파로 변모했고, 고구려를 무너트린 후 당나라 벼슬을 받았고, 막내 연남산도 보장왕과 함께 평양성을 지켰었는데 당나라 벼슬을 받았다는 것이 의아하다.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허난성에서 묘비가 발견되었다.
고구려 역시 당나라, 신라, 백제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다가 망했고, 결국 내부 배신자 때문에 망했다.
3. 신라
신라 역시 한국 역사의 큰 틀에서 보면 자주적인 국가의 형태를 처음으로 내던진 나라로 기록되게 됩니다. 당과의 연합으로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으나 외세의 힘을 끌어들였고, 결국 한반도 남부가 유지하다가 망하게 되었다.
4. 조선
신라에 이어 사대주의, 신하국 등 별의 별 이상한 말을 만들어 가면서 가장 비참한 국가 형태를 유지했다. 조선 역시 쿠테타로 나라를 세웠으며, 비상식적으로 비자주적인 국가 형태를 유지하다가 망했다. 막판에는 왕권은 그냥 장식일 뿐, 외척, 즉 왕비를 중심으로 정치를 이어가는 세도정치를 하다 국제질서 파악도 못하고 망했다.
5. 조선 중기 -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1592년에 발발했는데, 1543년 포르투갈인들이 넘겨준 조총 2자루가 일본 군대도 변하게 하고, 일본이 한국이 침략하는 원인이 됐던 것이다. 한국은 이미 매우 이른 시기에 조총을 넘겨받고도 청나라 속국의 관계를 져버리려는 발상을 하지 못했다. (자주적인 나라) 오히려 명과 함께 일본을 무너트렸으나, 스스로 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청나라 속국이 됐다.
6. 조선말기 - 일제침략기
조선은 너무 심하게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각종 사건이 터질때마다 조선왕실은 청나라 군대를 요청했다. 4백년이 지난 엄청난 세월 동안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결코 자주적인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막말로 확실한 빙신 짓이었다.
외톨이, 우물안 개구리 신세도 면치 못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이전에 사실 자주적인 국가로 발돋움할 기회가 있었다. 바로 미국, 프랑스, 영국과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천주교인을 학살하면서 병인양요를 스스로 만들어냈으며, 미국이 통상을 요청했는데, 이를 공격해서 발생한 신미양요로 서양사회와 친구가 아닌 적관계가 되어 버렸다.
영국도 조선과 통상을 요구했는데, 프로비던스호(The Providence)가 1797년 정조 21년에 원산 근해를 항해했던 것을 시작으로, 1832년 순조 32년에는 로드 암허스트호(The Lord Amherst)가 충청도 홍주에 한달 정도 머물면서 통상을 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어 흥선대원군의 집정 시에는 로나호가 충청도와 경기도 연안에 나타나 통상 요구를 해왔고, 셔먼호는 평양에 와서 통상요구를 했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이렇게 한국은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기 위해 연해주, 만주까지 와 닿으며, 우리의 만주, 간도 땅을 야금야금 다 먹고 있었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이런 남하를 저지하려고 온 것도 모르고, 영국, 프랑스, 미국을 쳐부수고, 러시아에 빌 붙으려고 하는 액션을 취했었다.
정말 국제 정세를 몰라도 이렇게 모를수가 있을까? 이 시점에도 청나라와 러시아에 빌붙으려는 국가가 정말 나라냐? 그냥 왕가 10명 유지하려고 한반도 전체가 이렇게 힘들어야 한다는게 말이나 되나??
암튼 그러다가 결국 일본한테 식민지를 당했다.
7. 2018년 현재
한국 일부 언론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친중파.. 심지어 러시아랑 친해져야 한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단호하게 말하지만, 한국은 절대 러시아, 중국과 함께 미래를 꿈꿀수 없다. 왜일까? 현재 러시아 경제는 처참할 정도로 성적이 나쁘며, 중국 또한 전 세계 무역의 문제점을 발생시킬 뿐 더이상 저가정책으로 전 세계에서 부상하기 어렵다. 또한 중국은 기본적인 정의, 인권, 양심이 없고, 일반 대중, 시민의 자유와 발언 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은 모든 것이 과거 청나라 시대 마냥 자신들의 이기적인 정책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이 잘 살고 강대국이 되려면 한국은 잘사는 나라들과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