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슬픈 역사는 스스로 만든 것도 없잖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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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고, 과거 속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그 아픔은 배가된다."


왜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왜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다짐하지 않는가?

왜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지 않는가?


한민족의 역사가 어두워진 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왕(지도자)의 지나친 호의와 무능

둘째, 내부의 적


우리가 잊고 있지만, 주변국 일본과 중국은 그 헛점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다.


1. 고조선


고조선은 망했다. 아주 기가 막히게 어이없이 ㅜ


연나라 위만이 천여명을 이끌고 패수를 건너서 조선에 들어와 고조선 준왕에게 고공지의 수비를 하겠다고 속여 신뢰를 얻었고, 자기 세력을 기른 후에 준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거짓으로 한나라 병사가 십도로 쳐들어오니 들어가 왕을 호위하겠다고 속여 나라를 아주 손쉽게 빼앗았다.


고조선 멸망의 원인

왕(지도자)의 지나친 호의와 무능 - "뭘 믿고 위만 따위에게 고공지 수비를 하게 하고, 한나라 병사가 쳐들어 온다고 왕의 호위를 맡기나? 그것도 천명에게? 기가 막히고 어지럽다."


2.. 위만조선-흉노-한


우리가 말하는 고조선... 있다 없다라는 유치한 논쟁을 아직까지 하고 있는 이 우둔함. 고조선은 당연히 존재했고, 한나라와 경쟁관계에 있었다. 당시 고조선은 흉노와 연합을 했고, 당연히 한나라와의 전투는 계속됐다. 당시 한나라는 고조선 왕검성을 여러번 공격했다. 


한서 위현전에서는 "동쪽으로는 조선을 정벌하여 현도와 낙랑군을 설치하여 흉노의 왼팔을 잘랐다."라고 적고 있다. 


또한, 한서 무제기에는 "천하의 사형수를 모집해 조선을 공격했다."고 적었는데, 고조선의 전투 결과 내용을 놓고 보면 고조선의 군사력이 대단히 강했음을 볼 수 있다. 고조선은 전쟁하는 과정에서 패수 서군, 패수 상군 이렇게 군대를 잘 배치해서 한나라 군대를 잘 막아냈다. 사마천도 사기 조선열전 마지막에 평을 써놨는데, 결코 한나라가 전쟁을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조선의 불운은 결코 밖에 있지 않았다. 


한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던 참 니계상(재상)이 자객을 보내 우거왕을 살해하고 한나라에 투항함으로써 왕검성이 함락되고 위만 조선이 망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만조선의 멸망의 원인

내부의 적 - "참 니계상(재상)의 우거왕 살해"



3. 고구려


고구려 당시에도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고구려가 대신라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을 때 당은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왕태자를 장안(長安)에 입조시키라고 요구해서 조정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양분돼 치열히 논쟁했다. 강경파는 왕태자를 장안에 보내지 말라고 주장했고 온건파는 왕태자를 장안으로 보내 당과 관계를 더 돈독히 하자고 주장했다.


영류왕은 결국 온건파 손을 들어주었고, 640년 왕태자 고환권을 장안으로 보내자 641년 당 태종은 진대덕을 보냈는데, 이는 요수에서 평양성까지의 고구려 지리를 파악하기 위함이었고, 각 성의 배치된 군사력까지 면밀하게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당에 귀국한 진대덕은 당 태종에게 고구려를 공격하라고 간언했다. 


강경파의 화가 극에 이르렀는데, 영류왕은 천리장성 축조까지 중단하자고 주장하였다. (왜 그랬을까?)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하던 연개소문은 이에 반발했고, 온건파가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열병식 때 조정 신하들을 대거 준인 후, 영류왕 까지 살해하고 영류왕의 동생인 고대양의 아들인 보장을 옹립했다.


그 후, 연개소문이 죽은 후, 세 형제는 골육상쟁으로 고구려의 패망을 앞당겼다. 연남건과 연남산에게 쫓겨난 연남생은 당으로 도망쳐 고구려 공격에 앞장서는 등, 고구려의 안타까운 패망에는 연개소문과 연걔소문의 형제들이 있었다.


고구려의 멸망원인: 둘다 있음

첫째, 왕(지도자)의 지나친 호의와 무능

둘째, 내부의 적


4.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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