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일요일 뭐하지.. 나들이가기 (주말여행) -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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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미래, 전통과 첨단이 융화된 도시를 꿈꾸는 익산시는 사실 매우 역사적인 지역 중 한 곳입니다. 인산시는 대한민국 4대 고도 중 한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국내 유일의 보석박물관, 4대 종교 성지 등 역사와 미래, 전통과 첨단이 융화된 조화롭고 멋스러운 도시입니다.


익산시에는 천만송이 국화축제, 서동축제, 보석대축제가 있습니다. 또한 역사/관광 지구로는 미륵사지와 보석화석박물관이 있습니다.


- 천만송이 국화축제 (10월) www.iksan.go.kr/gukhwa

익산천만송이국화축제는 익산시 중앙체육공원에서 해마다 열리는 행사로 1973년 농업기술센터에서 소규모 국화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가 지금은 전국3대 국화축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천만송이 국화축제에서는 다양한 국화 작품과 더불어 지역상품판매 및 문화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 서동축제 (5월) seodong.iksan.go.kr

서동축제는 1968년 마한민속제전에서 유래하여 지금까지 내려오는 익산의 전통축제로 서동설화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무왕 퍼레이드, 서동 선발대회 등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한 축제입니다.


이 밖에도 서동가요제, 뮤지컬 공연 등 행사가 진행됩니다.


- 보석대축제 (4월, 10월) www.iksanjewelpalace.com

보석의 도시 익산에서 열리는 보석대축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귀금속 판매센터 주얼팰리스에서 개최되는 축제로 60여개 업체들의 정성과 혼이 담긴 작품을 관람할 수 있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주얼리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보석 및 귀금속 제품을 전시하며 20% 특별할인행사 등이 열립니다.


- 미륵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미륵사지는 백제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삼국시대 최대 규모의 사찰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하루 빨리 복원이 되어, 전세계인과 함께 모두 방문하는 날이 오길 고대합니다.


- 보석 화석 박물관

보석박물관은 11만여점 이상 진귀한 보석을 소장하고 있으며 지질시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화석전시관에는 시대별 각종 화석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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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한국 문화재 복원/보존 - 단청, 문화재 복원, 관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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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는 고려시대까지는 매우 찬란하고 화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가 되면서 중국의 억압때문에 왕이 사치를 못부리게 되니, 사대부 집안들도 맘껏 자기 맘대로 멋진 집을 짓거나 절을 지을 수 없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조선시대 건축, 예술, 도자기 등 많은 분야의 결과물들은 소박함이 묻어나고 단아한 멋이 있기는 커녕 "그저 그렇네~ 보통이네~"란 말만 듣기 쉽다. 실제로도 미국 메트로폴리탄 등 유명 박물관에서 중국, 일본관은 규모도 크고 사람들이 넘치는 반면, 한국관은 파리가 날리기 일쑤다!




 

비단 이것 뿐이랴?!


각국의 중요 관광지를 돌아다녀 보면 몇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1. 수준낮은 역사 지식과 열악한 건축물 관리

 

한국 전통 건물에 문제점은 바로 단청을 너무 떡칠을 한다는데 있다. 오른쪽 단청은 아름다워 보이기는 커녕 과거 아줌마들이 하던 눈썹 문신처럼 촌스럽고 없어보기며, 심지어 딱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단청을 한국 모든 문화재에 적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 신라, 백제, 고려까지 떡칠하고 있다. 정말 기가 막히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재 세계유산인 불국사도 조선시대 양식으로 떡칠되어 있다. 분명 신라시대 유물인데도 말이다!!!

 

저런 단청은 조선시대 것으로서 특히 연두빛 계열이 매우 촌스럽고 전문가적으로 봤을때도 색의 조화가 맞지 않아 분위기를 매우 수준 이하로 끌어내려 버린다. 심지어 이런 수준이하의 색감으로 떡칠된 단청이 조선 전통 왕가에서 쓰던 대표적 양식인지 아님 외딴 시골 절간에서 사용된던 것이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6.25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어떤 단청을 적용하느냐에 따른 단청의 전체적인 느낌의 차이는 아래 사진과 비교를 해봐서 확실한 분위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단청이 과하지 않게 들어간 경우




 

일본 교토 황궁에 금빛 문양의 건축물 (쿄토는 백제 영향을 많이 받은 곳)

 


삼국시대는 알록달록 단청보다는 적색 칠이나 황금 문양이 일반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문화재청은 저런 몰상식한 행정으로 촌스럽고 수준낮은 단청을 모든 문화재에 적용하고 있다.




 

더큰 문제는 저렇게 알록달록, 세밀한 문양이 들어가게 되면 한번 덫칠하는데 수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물감 개발을 해서 오래 유지되도록 하던지 1년은 커녕 6개월만 지나도 비바람에 벗겨지고 다시 예전 상황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과거 유명 관광지에 갈 때마다 단청은 대부분 벗겨지거나 그 빛깔을 잃고 있어 매우 우중충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강릉 선교장 안채와 담




 

백제 왕흥사를 모델로 지었다는 견해가 전해져 오고 있는 일본 아스카 사원


 

<위 사진참고>

조선시대 명문가의 집을 보더라도 단청이 칠해져 있기는 커녕 백제문화가 전해져 그대로 간진하고 있다는 일본 건축물과 같이 나무색, 흰색이 전부이다.

 

그러나 얼마전 부여에 백제 테마파크가 지어진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5층 목탑은 아래 사진과 같이 철저히 조선시대 단청으로 떡칠되어 있었다.

 

건축 스타일도 완전 조선시대 느낌이 강해서 완전히 경복궁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사실 경복궁 단청 자체도 정확하게 재현한건지 일반 시골 절간 단청을 한건지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백제 테마파크의 5층 목탑

 

법주사 5층 석탑 (신라)

 

지금이라도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시대 만큼은 시대에 맞게 문화재를 복원해야 한다.

 

심지어 조선시대 건축물이라 해도 모두 무조건 저런 촌스런 단청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관련자들의 확실한 개념 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다.



 



2. 흙먼지 날리는 관광지

 

일본 관광지에 가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깨끗함!!


걸을 때 상쾌함!!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바로 한국처럼 비만내려도 진흙탕이 되거나 바람불면 먼지가 휘날리는 흙먼지, 모래 대신 고급의 굵고 독특한 재질을 깔기 때문이다. (배수를 위해 땅 속 깊이 층층히 다른 재질로 처리)

 

과연 한국 왕가에서도 경복궁처럼 그런 흙먼지 날리는 그런 흙,모래를 바닥재로 썼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는 너무 심각하다.

 




 

게다가 그 울퉁 불퉁한 경복궁의 돌로 된 길재정비가 필요하다. 이건 국가적 망신이다. 아니 외국 관광객에게 적이 들어오면 빨리 못뛰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나 지껄이는 안내원은 또 뭐냐?? 참나...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 너무 많다!

 

한국도 걷고 싶고 편안한 관광지를 만들려면...


1) 비법은 고급 재질을 효과적으로 까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배수, 침수 등 모든 상황 고려 필수)


2) 돌로 된 길은 비가 와도 침하가 되어 울퉁 불퉁하게 되지 않도록

전문적으로 다시 정비하여야 한다.

 

★ 결론 ★

 

한국 문화재 관리상의 여러 문제점이 많겠지만,


1. 시대별 단청, 건축 양식에 맞게 문화재를 복원


2. 먼지 날리는 문제 개선

위 두가지 만큼은 꼭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본 쿄토 황궁의 금빛 문양보다도

더욱 찬란했던 신라, 백제 문화재를 앞으로

잘 복원, 보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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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의 진실 Truth of Japanes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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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일본 역사는 완전히 왜곡되어 있다.
일본이란 나라 이전 일본 지역은 백제국의 속해 있었다.
백제는 왕이 일본 지역을 왕자가 지배하고 있었다.

Now, Japanese history is totally distorted.
Before Japan was established, the part of the land was belonging to Baekje (Korea).
Baekje King ruled his own land in Korea peninsula and a prince ruled Japan Islands.

◇남백제촌 터전인 오사카 중심지의 사케노기미의 사당 다카아이신사.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가 생겨났고.
왕권을 놓친 서소노 일파가 남하해 백제를 세운다.

백제는 이어 일본에 진출해 왜를 물리치고 백제 분국을 세운다.

After Gojoseon, Buyeo and Goguryeo were built in there and the Seosono part,
which failed to get the royal power, built Baekje in Southern area of Gogoryeo.
Then Baekje conquered Waegu in Japan Islands and the land was taken by Baekje Kingdom.



현재 일본에서 백제 뿐 아니라 가야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데,
이는 같은 문화권 내에 있다는 증명이고, 백제, 가야가 연관되어 있다는 증명이다.

Now, many remains related to Baekje and Gaya were found in Japan.
This means that it was the same culture, nation and family and it proves that Baekje and Gaya were related.

◇남백제촌 지역의 백제인 닌토쿠 왕의 총신 사케노기미 무덤.

그런데 신라 당 연합 군이 백제를 멸망 시킴으로 일부 백제인은 일본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것이 일본 역사의 왜곡 시발점이다. 일본은 이때 일본서기를 집필한다.

However, after Baekje was collapsed by the allied forces; Silla and Tang,
some Baekje people moved to Japan Islands.
This was the starting point of distorting Japanese history.
Nihonshoki was written around at that time.

◇오사카의 닌토쿠 왕릉.

역사란 참 아이러니 하다.
백제란 나라는 일본에 있던 당시 왜란 나랄 멸망시켰고, 백제의 일부분이었던 일본은 후에 조선을 쳤다.

History is very ironical.
Baekje conquered Waegu in Japan Islands and Japan which was a part of Baekje invaded Joseon (Korea).

어쨌든, 문제는 일본은 이런 사실을 감추고 자기네 역사를 너무 치켜 세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멋있게 포장해서 역사를 왜곡시킨다.

Whatever, the thing is that Japan has hidden this truth and Japanese wants their history to be victorious.
That is why they are wrapping their history very nicely and distorting totally, wrong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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