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 계보 - 흘러간 10년 세월과 문무관 차별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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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발해 시대가 끝나고 고구려를 표방하는 고려가 들어선 것은 참으로 잘된 일이었지만, 시기적으로 고려는 발해가 망할 즈음에 북진을 했어야 했지만, 북진 정책이 너무나도 많이 느렸습니다.

발해가 926년까지 유지를 하였으므로 초기부터 신라, 백제보다는 발해를 염두에 뒀어야 했지만, 신라는 한참 뒤인 935년까지 유지됐으므로 약 10년의 시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좋은 시기를 놓침으로써, 고려는 고구려, 발해가 활동하던 만주 지방을 모조리 거란족, 여진족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일각에서는 고려가 고구려 이름을 씀으로써 여진족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갈로 불리던 여진족은 고구려의 구성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발해가 망한 자리에 그대로 그곳에셔 나라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고려는 태조 918년부터 문종 1083년까지 165년간 동안 중앙집권적 국가기반과 귀족정치의 최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1170년(의종 24) 무신란이 일어나 1백년간의 무신정권이 성립되었고, 그 뒤 다시 1백년간의 원나라 간섭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종종 세계지도에는 고려가 원나라에 포함된 것으로 표시되는데, 간섭기가 맞으며 왕은 유지됐고, 100% 조정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국시대도 아니고 중세로 여겨지는 고려사회는 의식 자체가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사회의 문·무반 차별 대우로 인해 무신정변이 발생했으며, 보다 신경 쓸 일이 많았을텐데 사회 불난은 증폭됐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대요.. 몽골족은 지도자의 충성을 맹세하며 전세계를 날뛰고 있었을때, 한반도는 해묵은 차별로 서로 싸우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당한 것이구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결국 왕은 폐위되고, 무신이 왕이 되어 나라를 이끄는 양상이 된 것이었고, 원나라 간섭으로 인해 이런 왕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1백년 연장된 것이었습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이런 고려의 자존심을 되찾는 일에 대한 반역이었고, 왕의 권위가 고려 사회에서 얼마나 낮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려 왕조는 무신정권으로 한번, 원나라 간섭으로 두번, 이성계로 인해 세번이나 유린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1대 태조
918-943
왕건, 고려의 시조. 북진정책, 혼인관계를 통해 호족세력을 포섭함(왕권 안정).

2대 혜종
943-945
1대 태조 왕건의 맏아들. 이복동생들과 왕위 다툼에 시달림.

3대 정종
945-949
1대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혜종의 이복동생.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했으나 실패함. 재위기간은 4년.

4대 광종
949-975
1대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정종의 동생. 왕권 강화를 위해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과거 제도를 실시함.

5대 경종
975-981
4대 광종의 맏아들. 976년 전시과 제정, 6년간 재위함.

6대 성종
981-997
1대 태조 왕건의 손자.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채택(최승로의 시무28조 수용), 중앙집권적 국가운영체계의 기틀을 세운 왕.

7대 목종
997-1009
5대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개정하고 학문을 장려함.

8대 현종
1009-1031
1대 태조 왕건의 손자. 거란군의 침략을 불력(佛力)으로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6천여권)을 제작함. 관련사건: 강감찬의 귀주대첩.

9대 덕종
1031-1034
8대 현종의 맏아들. 국자감시를 실시함. 현종 때 시작한 국사편찬사업을 완성함.

10대 정종
1034-1046
8대 현종의 둘째 아들. 1044년 천리장성을 완성함. 노비종모법과 장자상속법을 제정함.

11대 문종
1046-1083
8대 현종의 셋째 아들. 고려시대 중 가장 찬란한 문화황금기를 이룩한 왕.

12대 순종
1083-1083
11대 문종의 맏아들. 재위 3개월만에 죽음.

13대 선종
1083-1094
11대 문종의 둘째 아들. 송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임.

14대 헌종
1094-1095
13대 선종의 맏아들. 즉위 1년만에 왕위를 숙부(숙종)에게 물려줌.

15대 숙종
1095-1105
11대 문종의 셋째 아들. 주전관을 두고 주화인 은병을 만들어 통용하게 함.

16대 예종
1105-1122
15대 숙종의 맏아들. 국학에 양현고라는 장학재단 설립하는 등 학문 진흥에 힘씀.

17대 인종
1122-1146
16대 예종의 맏아들. 김부식에게 명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함. 관련사건: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18대 의종
1146-1170
17대 인종의 맏아들. 정중부, 이의방 등이 무신정변을 일으켜 폐위됨.

19대 명종
1170-1197
17대 인종의 셋째 아들. 정권을 장악한 무신 최충헌에 의해 폐위됨.

20대 신종
1197-1204
17대 인종의 다섯째 아들. 최충헌이 실권을 잡았으며, 만적의 난 등 민란이 잇달아 일어남.

21대 희종
1204-1211
20대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폐위됨.

22대 강종
1211-1213
19대 명종의 맏아들. 1197년 최충헌에게 쫓겨 강화도로 갔다가 1211년 최충헌에 의해 왕위에 오름.

23대 고종
1213-1259
22대 강종의 맏아들.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로 천도하며 28년간 항쟁함.

24대 원종
1259-1274
23대 고종의 맏아들. 친몽정책과 개경환도를 추진하다가 임연에게 폐위(1269), 4개월 만에 복위함. 개경환도(1270) 후, 이에 반기를 든 삼별초의 항쟁 일어남.

25대 충렬왕
1274-1298, 1298-1308
24대 원종의 맏아들. 고려왕이면서, 원나라의 사위로 살아간 왕.

26대 충선왕
1298-1298, 1308-1313
25대 충렬왕의 아들. 한국사 최초의 혼혈왕.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원의 간섭과 권문세족의 반발로 성과를 거두지 못함.

27대 충숙왕
1313-1330, 1332-1339
26대 충선왕의 둘째 아들. 심양왕 고(충선왕의 조카)와의 정권다툼에 시달림.

28대 충혜왕
1330-1332, 1339-1344
27대 충숙왕의 맏아들. 방탕한 행동으로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복위됨.

29대 충목왕
1344-1348
28대 충혜왕의 아들. 8세에 즉위해 12세에 죽음. 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함.

30대 충정왕
1349-1351
28대 충혜왕의 서자. 12세에 원나라로부터 왕으로 책봉되었으나 3년만에 폐위됨.

31대 공민왕
1351-1374
27대 충숙왕의 둘째 아들. 고려 재건을 위해 개혁과 반원정책을 단행하였으나, 권문세족 반발, 공민왕 시해로 개혁 중단됨.

32대 우왕
1374-1388
공민왕이 시해되자 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후 폐위되어 강화도로 추방됨.

33대 창왕
1388-1389
32대 우왕의 아들. 9세에 즉위, 이성계에 의해 폐위됨.

34대 공양왕
1389-1392
20대 신종의 7대손. 고려의 마지막 왕.

댓글()

발해 왕 계보 - 상천용천부로 옮기면서 고구려 색이 흐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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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약 228년 동안 한반도 북방과 만주지역을 지배하면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건재했으나, 갑자기 어떤 이유도 없이 나라가 사라진 신기한 경우입니다. 그 이유도 그 단서도 없어서 백두산에 터지면서 나라가 망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는 듯한 단서가 있기는 합니다. 바로 4대 대원의 왕이 즉위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대원의는 왕의 직계가 아니었으나 문왕의 아들 광림이 일찍 사망하였고, 광림의 아들 대화여는 나이가 무척 어렸기 때문에 왕위에 올랐다가 1년도 안되어 죽임을 당했다.

결국 나라의 기틀인 왕가가 기초부터 흔들리는 것은 바로 56이나 다스리는 동안 행여 태자가 잘못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지혜로운 유언을 만들어 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한번 꼬인 왕가는 계속 꼬이기 시작했다.

다시 광림의 아들 대화여가 성왕이 되었으나 1년만에 병사하여 문왕의 막내아들인 대숭린이 강왕에 올랐다.

15년 후, 강왕의 아들 원유가 정왕으로 올랐으나 3년만의 사망하여 또다시 정왕의 동생 언의가 희왕으로 올랐으나 5년만의 희왕의 동생 대명충이 간왕에 올랐다.

즉, 정리하면 3대 문왕이 왕가를 튼튼히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793년부터 818년까지 25년간 7번의 왕이 교체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어지러운 기간에 1년만에 병사한 성왕은 수도를 동경용원부에서 상경용천부로 이전하였다. 황당한 일이라 아니할 수가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 두 지역은 거리가 서로 매우 먼 거리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왕이 자주 바뀌는 상황이고 기틀도 못잡은 주제에 상경용천부 지역은 거란과 말갈과 당에서 각각 매우 가까운 지역인데 그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멍청한 처사였다.

오히려 신라와 관계를 회복하고 내부 기틀을 다지는 것이 맞았다.

다시 괜찮을 것 같은 왕위계승은 또한번 형제 계승됨으로써 무언가 왕위계승의 문제점을 또는 권력을 가진 지배층과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예측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또한 위에서 지적했던 상경용천부 수도 이전은 “거란에게 나 좀 잡아먹어 주시오”를 외치는 격이었다.

925년 12월 거란의 야율아보기(태조)가 대군을 이끌고 침입, 발해의 부여부를 점령하고 다음해 수도 홀한성을 공격하자 마지막 왕인 대인선은 거란에 항복하고 말았다. 가 큰 땅을 가진 발해가 망했다고 해서 한반도 북부나 기타 지역에 고구려를 잇는 나라가 등장하지 못한 것은 두고 두고 억울한 일이다.

이렇게 발해는 허망하게 망한다.

일부는 여진족이 고구려의 후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만주족 자체가 고구려 국민이었으므로 틀리다라고 말하기는 또 어려울 것 같다.


1대 고왕
698-719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2대 무왕
719-737
1대 고왕 대조영의 아들. 중국 당나라와 대립함.

3대 문왕
737-793
2대 무왕의 아들. 당과 친선관계를 맺고 당의 문물을 받아들임.

4대 대원의
793-793
즉위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죽임을 당함.

5대 성왕
793-794
3대 문왕의 손자

6대 강왕
794-809
3대 문왕의 막내아들

7대 정왕
809-812
6대 강왕의 아들

8대 희왕
812-817
6대 강왕의 아들이자 정왕의 동생

9대 간왕
817-818
6대 강왕의 아들이자 정왕/희왕의 동생

10대 선왕
818-830
1대 고왕의 동생인 대야발의 4대손. 발해를 중흥시킨 군주로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음.

11대 대이진
830-857
10대 선왕의 손자

12대 대건황
857-871
11대 대이진의 동생

13대 대현석
871-894
12대 대건황의 아들

14대 대위해
894-906

15대 대인선
906-926
발해의 마지막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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